[양재섭의 평화 에세이 (4)]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분단 비극의 씨앗
- 기자명 양재섭 주주
우리 사회는 지난 80년 가까이 남북분단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20세기 내내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에 진입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모든 분야에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된 치명적 사회병리 현상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도대체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평화가 망가지고 살얼음판 같은 비(非)평화 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의 역사적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단순하고 간결한 정답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수많은 복합적 요인 중에서 미국과 일본이 몰래 한 약속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친다.
19세기가 문을 닫고 20세기가 활짝 열리던 시절, 대한제국과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일전을 벌였던 러일전쟁(1904.2.8.~1905.9.5.)이 종전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때 미국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전쟁부 장관이 도쿄를 방문하여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를 만나 장시간 회담하였다. 그 결과로 가쓰라-태프트 밀약(Taft–Katsura Memorandom.1905.7.29)이라는 괴물을 역사의 현장에 남겨 놓았다.
서세동점의 파고를 타고 물밀듯이 달려온 서구의 미국과 동양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일본이 의기투합하여 나눈 대화의 내용은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요약하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침탈하여 쇠말뚝을 박겠다는 것이고 서로 방해하지 말고 협력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남의 나라를 마치 제 물건인 양, 나누는 장면은 장물아비들이 훔친 물건을 분배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 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대로 을사늑약(1905.11.17.)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제국에 넘어갔고 소위 일제의 보호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되었다. 조약문서의 먹물도 마르기 전, 루스벨트 행정부의 워싱턴 당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제일 먼저 주한 미국공사 모건(Edwin V. Morgan)과 주한 미국공사관을 벼락같이 철수시켜 보란 듯이 일본의 행위를 잽싸게 정당화시켜 주었다.
결국 1910년 한일병탄에 의해 굴욕적인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밀약 업무를 수행했던 태프트는 미국의 27대 대통령이 되어 있었고 가쓰라는 여전히 일본 총리로서 식민지 경영의 최고 통치자였으니 이 모든 것이 우리와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3.1혁명, 상해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해방과 남북분단,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고난과 역경의 여정이었다. 가쓰라-태프트의 나비 효과는 우리들의 마음에 엄청난 생채기 투성이로 남아있고 오늘도 여전히 그 증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결과로 말미암아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에 직면하고 있다. 국권 상실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꿈틀거리는 한미일 관계의 모호성을 예리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대한제국은 교활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존재를 새까맣게 몰랐다. 일본제국이 위협적으로 황실을 조여올 때도 고종황제는 미국과 이미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에서 약속한 ‘조선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취지의 거중조정(居中調整, good offices) 조항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감언이설에 감쪽같이 속았으니 순진하게 심성이 고운 것도 죄라면 죄가 될 것이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1924년에 미국의 외교사학자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에 의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일본과의 비밀 조약”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그 실체가 소상히 밝혀졌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고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뚤어지고 배배 꼬인 ‘친일혐한(親日嫌韓)’ 인식이 오늘날 미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전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아무튼 여전히 씁쓸하고 언짢은 심사는 가시지 않는다.
도대체 외교란 무엇인가? 19세기 중엽, 영국의 외무장관과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던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은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友邦)도 없고, 영원한 적(敵)도 없고, 오로지 우리의 국익만 있다.”는 연설 문구를 통해 국제관계의 현실주의를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국제관계에서 이념이나 가치는 허구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우리의 속담은 국제관계학에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의 정례화를 결정한 작년(2023.8.18.) 캠프데이비드의 한미일 정상회담은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노회(老獪)함과 우리 대통령의 우직함이 짝을 이루는 모습 그 자체였다. 가쓰라-태프트의 트라우마와 기시감은 한국 외교의 현주소에 경종을 울리는 교훈을 준다. ‘줄서기’의 초보적 외교를 벗어나 ‘줄타기’의 노련한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셋이 함께 놀다 둘이 한 편을 먹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미 사전들에도 수록되어 있어 별로 새로운 조어도 아니지만 ‘프레너미(frenemy= friend + enemy)’라는 단어가 얼핏 떠오른다. 미국 작가 제시카 미트퍼드(Jessica Mitford)가 뉴욕 타임스(1977.9.13.)에 실린 간단한 글에서 사용한 단어인데 우리 인생살이 주변에는 이런 ‘친구 같은 원수’가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모든 나라가 프레너미이기에 ‘위험한 이웃’은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코리아나가 88서울올림픽에서 노래했듯이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